2.50

대상을 바라볼 때 사람의 기억은 그것을 그 대상으로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것은 상황과 기억처럼 개인의 '무언가'에 의해 항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무의미란 것은 어찌보면 정말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바라보고 대할 때 그것을 
그것 그대로의 온전한, 기호 이전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기억이 시작되기 전부터 모든 과정은 자극과 반응에 의해
세상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즐거움으로, 익숙함으로, 지겨움으로, 지친 거부감으로, 변화로, 새로움으로, 즐거움으로, 익숙함으로..
반복되는 자극과 반응에 의해 주변은 카테고리로 나누어지고
범주화된 그것이 익숙해진 상태에서는 
더 이상 그것 이상의 혹은 이하의 다른 반응은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모든 대상 모든 감각에 의한 인지는 그 대상에 대한 빛, 음파, 진동 따위의 반응에 의한 결과.
그것은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심지어 정확한 관찰없이도 어느 범주의 충분조건 혹은 자격요건을 갖추게 되면
그것은 그야말로 그것으로 인식된다.
그 인식의 빠른 정도는 삶의 꾸준한 의식적인 결국 무의식적인 훈련의 결과.

그 대상, 그 대상 자체는 객관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도 또한 범주화하던 버릇의 훌륭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극한의 사실을 다루는 과학, 감히 반론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 프로세스는 필요없다. 
이미 그것은 종교처럼 하나의 이론이나 신념을 넘어선 절대적 존재이기에 그냥 그렇듯 그렇게 끝까지 살아가면 된다. 늘 삶.

늘 아기같은 새로움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글렀다.
이미 잊기엔 너무나 익숙한 자전거처럼 이미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것은 되돌리기 참 힘들다.

엘란트라, 그랜져 89년형, 포터,

입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것은 그래, 엘란트라, 그랜져, 포터지.
실제와 비교하기 전까지 너무나 익숙한 그것과 낯설게 조우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은 정말 찰나만큼 아리송히 낯설다가 다시 익숙해진다.
어찌 그랫나 싶을만큼 그 순간은 오지 않거나 극히 순간적이거나.

되돌리기 힘든 만큼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의 힘은 정말 놀라우리 만큼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그것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가장 손쉬운 별 생각없는 방법은 
환경을 크게 바꿔보는 방법.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삶의 터전을 옮기기에는 너무나 이룬 것이 많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는 매력적인듯 하지만 가당치도 않는 남 얘기일지도 몰라서.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에 따른 실천의 실마리 중 하나가 '2.50'.
일단 나 스스로 느끼는 일상의 미를 꺼내본다.
혼자 스스로 몰두해 매력을 느끼던 대상을 그 훈련의 도구로 삼아본다.
'2.50'를 심고 나서,
Joe가 느끼는 또 다른 일상의 매력을 또 하나의 씨앗 삼으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Joe의 관점은 보다 디자인적인 측면에 있다는 점이다.

점차 하나 하나 그 실천의 종류를 늘려나가다 보면 
대상의 '대상화하기'를 통해 무의식을 무장해제 시킨 후 그 고정된 인식을 서서히 변화시켜 본다.
이것은 단발적인 하루 이틀의 과정이 아닌 
세월을 요하는 프로세스이다.
그 핵심은 뭉근한 변화에 있다. 
급작스런 삶의 변화가 아닌,
누가 시켜서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닌,
스스로 변화하였음을 느끼게 하는데에 이 프로세스의 목적이 숨어져 있다.
단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스스로 변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타인의 취향까지.
나 스스로부터의 실천이 publc의 일상에 씨앗을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