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들이
훗날 말해지길
그때.
그때 그 순간들이
지금 말하여지길.
알길없던 저 순간들이
지금 바라보면 훗날로.
내가 말하는데로
내가 행하고
내가 행하는데로
네가 말하고
네가 말하는데로
내가 행하는
끊임없는 흔들림과 반복 속에서
차곡차곡 훗날은 이렇게
바라는데로 행하는데로
기록이 되고 있다.
네가 믿는데로
되리라는 것
바라보는데로.
너 바라는데로
보이고,
들리고,
그렇게 너 행하고.
그 행함이 기록이 될 뿐.
원래 너와 내가 어떻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은
그저 힘없는 투정처럼 허무함에 또 다시 꿈을 꾸게 한다.
네가 그렇다면
네 훗날은 그럴것이고
네 욕구와 의지에 이끌린 훗날.
그 훗날은
그것 봐라 그렇지 않느냐는
안심을 가져다 주며
일련의 불씨로 남아 있던 찜찜함을
-훅
꺼뜨린다.
하지만
원래 너와 내가 어땠는지
그때에도 훗날에도
그 훗날의 그때에도
알길이 없다.
찜찜함이 뭘 말하려는건지
어떤 확신의 불길 속에서
뒤집힌 눈으로
어느 귀를 습하게 하고 있는지
어색한 몸짓과 언어가 멋스럽고.
시끄럽기만한 지금.
어느 믿음과 의지를 향해
욕망을 삼킨 너와 내가 죽어가는지.
being - what if.
Nothingness.
In order to be rememberable one
today I shake hands like
yesterdays.
In order to be irreplaceable one
today I say something...
something make sense.
always.
...
In order to be remarked by others
today I make something...
something to replace others'
yesterdays.
rememberable
Today
what if...
what if I reject
what if I reject to do
yesterdays?
Tomorrow
what am I?
In order to be rememberable one
today I shake hands like
yesterdays.
In order to be irreplaceable one
today I say something...
something make sense.
always.
...
In order to be remarked by others
today I make something...
something to replace others'
yesterdays.
rememberable
irreplaceable
remarkable
...
like yesterdays.
...
like yesterdays.
Today
what if...
what if I reject
what if I reject to do
yesterdays?
Tomorrow
what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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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dawn which means aurora
두가지 practice.
1
false monuments.
2
false memory.
닿을 수 없는 그 곳에 있는 그것처럼.
닿을 수 없지만 보고싶은 맘으로
매개체를 통한 조우만이 허락된 그것처럼.
실제 실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설사 그것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아무에게 의미를 갖기 전까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미 있는 것을 바라 보고, 의미 있는 것을 행하고
언제나 의미를 알아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이 시대의 삶 속에서
하나의 거짓 기억과도 같은, 하나의 거짓 존재와도 같은
결국은 그야말로 아무에게 이유가 있어 존재하는 그것들이
누군가에겐 무의미를 넘어 존재조차 희미한 기억으로,
희미한 기억조차 남기지 못한 존재로
함께 존재하며 한 세상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일방적인 기억은 존재를 확인케 해주는지.
쌍방의 소통에 의해 서로의 존재를 각자의 삶 안에서 서로 키워나가는 것만이
존재의 기억이겠지.
사랑의 존재는 너무나 좋은 기억이라 당연하지만
미움과 비난의 순간 또한,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존재를 확인케 했던 것들이겠구나.
어쨋든.
아무에게 아무것은 어떤 것이겠거니라는 맘으로
아무것은 머리속에서 사라진다.
봐도 본것이 아닌.
false memory는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봐도 본것이 아닐 것이 만약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차이점을 느끼게 되는가.
그 차이점을 느끼기엔 넘치는 정보와 자극들로 삶이 가득한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내 삶에 필요하다 여겨 그 존재를 내 생활 안에 기억해 놓은 것은 무엇인지.
내 삶에 필요없다 여겨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낸 그것들은 무엇인지.
무엇에 의해
무엇이
우리 삶에서
일상의 그것들을
그 경중에 따라 그저
그저 없는 존재로 분류하였는지.
삶 속에서
어떠한 거름망에 의해
흔적도 없이 걸러져
사라져버렸는지.
---
이것은 '2.50'의 일상의 것에 관한 도전과도 의미가 닿아있는 듯 하다.
false monuments.
2
false memory.
닿을 수 없는 그 곳에 있는 그것처럼.
닿을 수 없지만 보고싶은 맘으로
매개체를 통한 조우만이 허락된 그것처럼.
실제 실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설사 그것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아무에게 의미를 갖기 전까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미 있는 것을 바라 보고, 의미 있는 것을 행하고
언제나 의미를 알아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이 시대의 삶 속에서
하나의 거짓 기억과도 같은, 하나의 거짓 존재와도 같은
결국은 그야말로 아무에게 이유가 있어 존재하는 그것들이
누군가에겐 무의미를 넘어 존재조차 희미한 기억으로,
희미한 기억조차 남기지 못한 존재로
함께 존재하며 한 세상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일방적인 기억은 존재를 확인케 해주는지.
쌍방의 소통에 의해 서로의 존재를 각자의 삶 안에서 서로 키워나가는 것만이
존재의 기억이겠지.
사랑의 존재는 너무나 좋은 기억이라 당연하지만
미움과 비난의 순간 또한,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존재를 확인케 했던 것들이겠구나.
문득, 누군가를, 누군가와 슬피 나눈 기억마저 존재를 확인한 과정이란 생각에.
내가 미워한 존재, 나를 미워한 존재, 서로의 존재를 위협한 존재마저도
나의 실재함을 유한한 삶 속에서 그 삶으로 증명해 내보이던 존재들이란 생각에.
그런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진다. 눈물이 날것같다.
어쨋든.
아무에게 아무것은 어떤 것이겠거니라는 맘으로
아무것은 머리속에서 사라진다.
봐도 본것이 아닌.
false memory는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봐도 본것이 아닐 것이 만약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차이점을 느끼게 되는가.
그 차이점을 느끼기엔 넘치는 정보와 자극들로 삶이 가득한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내 삶에 필요하다 여겨 그 존재를 내 생활 안에 기억해 놓은 것은 무엇인지.
내 삶에 필요없다 여겨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낸 그것들은 무엇인지.
무엇에 의해
무엇이
우리 삶에서
일상의 그것들을
그 경중에 따라 그저
그저 없는 존재로 분류하였는지.
삶 속에서
어떠한 거름망에 의해
흔적도 없이 걸러져
사라져버렸는지.
---
이것은 '2.50'의 일상의 것에 관한 도전과도 의미가 닿아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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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보던 나는 깨달았다.
난 거기에 닿을 수 없다.
보이지만 저기 저기에 있다는 걸 알지만,
내가 갈 수 없는 저 곳.
나에겐 사진 속 오로라처럼
그저 바라보며
언젠가 닿을 수 있겠지 소망하지만.
난 거기에 닿을 수 없다.
보이지만 저기 저기에 있다는 걸 알지만,
내가 갈 수 없는 저 곳.
나에겐 사진 속 오로라처럼
그저 바라보며
언젠가 닿을 수 있겠지 소망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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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이야기.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072300209205008&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07-23&officeId=00020&pageNo=5&printNo=17782&publishType=00020
너 나 우리. 나 너 너희들.
그들과 우리라는 인식을 생각해본다.
나는 너희들보다 좀 늦게 이주해 온 이주민이다.
이미 8년을 여기서 보낸 나의 사람은 너희를 너희들이라 부른다.
그래 8년은 그래도 짧은 시간인가봐.
더 긴 세월이 아마 필요한가보다. 생각했다.
어느 날.
Bunjil에 대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너희들이 그들을 그들이라 부를 때
나는 너무나 큰 두려움과 속상함에 말문이 막혔다.
결국 이 생에
나는 너희들과 함께 우리들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redevelopment에 늘 따르는 진통의 근원.
다시개발. 이것의 참 의미는 나아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누구를?이라는 대목은 목적을 대대히 선전하며 그 초점을 흐린다.
redevelopment는 새로움을 가져온다.
신선함. 새로움. 언뜻 일관되고 서로 통하는 듯이 흔한 좋은 뜻이지만
너무나 폭넓은 범주로 엄연히 다른 여럿을 하나의 속성으로 여기며
마치 우리가 우리지 너네가 뭐냐는 듯.
할 말 잃은 우리를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렇게 점점 이쁜 표정으로
새로운 우리와 헌 우리를 갈라 놓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비겁히 우리이지 않기를 바라보지만.
이제 재개발은 슬픔을 내포한다.
그것은 그 우리들에 진정 우리가 포함되지 못하고
우리들은 너희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주체가 너희들이고
우리들 중 너희와 흡사한 우리들만이 새 우리들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은 또다른 너희들이 되어
눈엣가시로 전락한다.
울어봐야 소용없다.
너희들이 된 우리들은 이제
새 우리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양보하고 너희들을 바라보며
빈자리를 향해 흩어진다.
그것은 이미 사라져 흩어진 너희들이 지칭하는 그들처럼.
너 나 우리,
나 너 너희들.
함께라.
가볍게 미소지으며
흩날리는 무거운 맘.
나는 너희들보다 좀 늦게 이주해 온 이주민이다.
이미 8년을 여기서 보낸 나의 사람은 너희를 너희들이라 부른다.
그래 8년은 그래도 짧은 시간인가봐.
더 긴 세월이 아마 필요한가보다. 생각했다.
어느 날.
Bunjil에 대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너희들이 그들을 그들이라 부를 때
나는 너무나 큰 두려움과 속상함에 말문이 막혔다.
결국 이 생에
나는 너희들과 함께 우리들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당혹감을 감추며 나도 그들을 그들이라 불러봐도
그들은 결국 내 모습일 뿐.
너희는 결국 내게 어느새 그들이 되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redevelopment에 늘 따르는 진통의 근원.
다시개발. 이것의 참 의미는 나아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누구를?이라는 대목은 목적을 대대히 선전하며 그 초점을 흐린다.
redevelopment는 새로움을 가져온다.
신선함. 새로움. 언뜻 일관되고 서로 통하는 듯이 흔한 좋은 뜻이지만
너무나 폭넓은 범주로 엄연히 다른 여럿을 하나의 속성으로 여기며
마치 우리가 우리지 너네가 뭐냐는 듯.
할 말 잃은 우리를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렇게 점점 이쁜 표정으로
새로운 우리와 헌 우리를 갈라 놓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비겁히 우리이지 않기를 바라보지만.
이제 재개발은 슬픔을 내포한다.
그것은 그 우리들에 진정 우리가 포함되지 못하고
우리들은 너희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주체가 너희들이고
우리들 중 너희와 흡사한 우리들만이 새 우리들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은 또다른 너희들이 되어
눈엣가시로 전락한다.
울어봐야 소용없다.
너희들이 된 우리들은 이제
새 우리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양보하고 너희들을 바라보며
빈자리를 향해 흩어진다.
그것은 이미 사라져 흩어진 너희들이 지칭하는 그들처럼.
너 나 우리,
나 너 너희들.
함께라.
가볍게 미소지으며
흩날리는 무거운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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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ee. I can see you.
동화처럼 요정처럼.
우연이 그냥 우연임을.
그런 단순한 우연이 나에겐 의미임을.
느껴지는 것을 아는 것으로 애써 부정하고
아는 것을 느껴지는 것으로 애써 덮으려 할 필요 없다.
그냥 그러면 그런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어찌 일관된 무언가 있다 믿고 의지해 살 수 있을까.
그럴 필요 과연 무얼까.
나 맞음 너 틀리고
나 맞으니 너 틀렸고
그럴싸한 말들.
결국 누굴 위한 근거들.
나지 뭐. 누구겠어. 인류?
아니다 해도 아닌게 있다면.
그럼 아닌건 뭔가.
타조가 왜그랬지.
아직 동화속에서 눈꼬릴 치켜뜨고
나의 공주님을 지키고 있나
단지 나는 기사이므로?
일관성.
그리하여 무결성.
integrity.
그것이 갖는 의미는 늘 한결같이 순수하다.
아름답다.
마치 종교와도 같은.
의미와 근원의 부정을 부정케 한다.
그것은 왜 그런가?
어찌 이리 한없이 늘 그런가?
근데 그게 말이 되나.
살다 살다 과연 살다 그걸 보았나?
너와 나는 그런가?
사람이 어떠한지를 아는 것.
내가 어떤지.
결국 모르겠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는 굴레를 벗는데
한 실천이 되겠지.
옳은지 그른지
잘 알지도 못해.
아는 척 행동하다 아는 줄 착각한다.
모른 척 행동하다 모른다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integrity.
동화처럼 요정처럼.
그래도 나는 사람인걸.
타조가 왜 그랬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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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ee. I can see you.
aurora. - the first experience.
I met this while I was reading a book at dawn.
It was a rainy day as a usual winter day in this city.
The rain finally stopped.
I couldn't notice the emerge of it.
It disappeared when the dawn broke.
When will it be the next to meet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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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대상을 바라볼 때 사람의 기억은 그것을 그 대상으로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것은 상황과 기억처럼 개인의 '무언가'에 의해 항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무의미란 것은 어찌보면 정말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바라보고 대할 때 그것을
그것 그대로의 온전한, 기호 이전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기억이 시작되기 전부터 모든 과정은 자극과 반응에 의해
세상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즐거움으로, 익숙함으로, 지겨움으로, 지친 거부감으로, 변화로, 새로움으로, 즐거움으로, 익숙함으로..
반복되는 자극과 반응에 의해 주변은 카테고리로 나누어지고
범주화된 그것이 익숙해진 상태에서는
더 이상 그것 이상의 혹은 이하의 다른 반응은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모든 대상 모든 감각에 의한 인지는 그 대상에 대한 빛, 음파, 진동 따위의 반응에 의한 결과.
그것은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심지어 정확한 관찰없이도 어느 범주의 충분조건 혹은 자격요건을 갖추게 되면
그것은 그야말로 그것으로 인식된다.
그 인식의 빠른 정도는 삶의 꾸준한 의식적인 결국 무의식적인 훈련의 결과.
그 대상, 그 대상 자체는 객관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도 또한 범주화하던 버릇의 훌륭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극한의 사실을 다루는 과학, 감히 반론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 프로세스는 필요없다.
이미 그것은 종교처럼 하나의 이론이나 신념을 넘어선 절대적 존재이기에 그냥 그렇듯 그렇게 끝까지 살아가면 된다. 늘 삶.
늘 아기같은 새로움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글렀다.
이미 잊기엔 너무나 익숙한 자전거처럼 이미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것은 되돌리기 참 힘들다.
엘란트라, 그랜져 89년형, 포터,
입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것은 그래, 엘란트라, 그랜져, 포터지.
실제와 비교하기 전까지 너무나 익숙한 그것과 낯설게 조우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은 정말 찰나만큼 아리송히 낯설다가 다시 익숙해진다.
어찌 그랫나 싶을만큼 그 순간은 오지 않거나 극히 순간적이거나.
되돌리기 힘든 만큼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의 힘은 정말 놀라우리 만큼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그것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가장 손쉬운 별 생각없는 방법은
환경을 크게 바꿔보는 방법.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삶의 터전을 옮기기에는 너무나 이룬 것이 많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는 매력적인듯 하지만 가당치도 않는 남 얘기일지도 몰라서.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에 따른 실천의 실마리 중 하나가 '2.50'.
일단 나 스스로 느끼는 일상의 미를 꺼내본다.
혼자 스스로 몰두해 매력을 느끼던 대상을 그 훈련의 도구로 삼아본다.
'2.50'를 심고 나서,
Joe가 느끼는 또 다른 일상의 매력을 또 하나의 씨앗 삼으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Joe의 관점은 보다 디자인적인 측면에 있다는 점이다.
점차 하나 하나 그 실천의 종류를 늘려나가다 보면
대상의 '대상화하기'를 통해 무의식을 무장해제 시킨 후 그 고정된 인식을 서서히 변화시켜 본다.
이것은 단발적인 하루 이틀의 과정이 아닌
세월을 요하는 프로세스이다.
그 핵심은 뭉근한 변화에 있다.
급작스런 삶의 변화가 아닌,
누가 시켜서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닌,
스스로 변화하였음을 느끼게 하는데에 이 프로세스의 목적이 숨어져 있다.
단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스스로 변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타인의 취향까지.
나 스스로부터의 실천이 publc의 일상에 씨앗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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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aurora. - observe it whether you can reach it or not.
실제인지 아닌지는 바라보는 관점과 상황에 기인한다.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 중요한지,
그것을 만졌다는 것이 중요한지.
실제함에 대한 생각은 실제와 거짓과는 상관없이
그 관점과 상황이 이끄는 결과에 의한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감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는 한계안에서
그 실제에 대한 의미를 관찰한다.
아닐 수 있음을 진심으로 느껴본다.
소위 능란한 '말'과 흔히 빌리는 '사고'의 힘을 빼본다.
이것은 'Fix' 시리즈와도 연관된다.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 중요한지,
그것을 만졌다는 것이 중요한지.
실제함에 대한 생각은 실제와 거짓과는 상관없이
그 관점과 상황이 이끄는 결과에 의한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감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는 한계안에서
그 실제에 대한 의미를 관찰한다.
아닐 수 있음을 진심으로 느껴본다.
소위 능란한 '말'과 흔히 빌리는 '사고'의 힘을 빼본다.
이것은 'Fix' 시리즈와도 연관된다.
Fix 'soap', 2008 / 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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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dawn which means aurora
감추려는 것 사라지는 것.
감추려다 드러나고
드러내다 사라지는 것이 있다.
둘은 아닌듯 결국 함께.
모난, 고운.
하루 하루를 보내며
세월에 의해 산화되는 삶은
닳고 닳은 너와 내가 되는가 하면,
푹 고아져
희미한 빛깔, 찐득히 녹아든
너와 나
훌훌 삼킬 수 있는 진국이 되기도 한다.
Layers.
그것은 생활을 반영한다.
나를 보라고 좀 나를 보라고
고래고래 형형색색
눈길을 끈다.
한달, 한주 얼마 안가 그것은 또다른 색으로 덮힌다. 깨끗이.
풀은
, 본의 아니게,
, 그 전의 의미를 뭉게며,
, 보란듯이,
1미리도 되지 않는 역사와 역사를 끈적히 붙인다.
켜켜히 떡진 그 이야기를 알기 위해선 조심스레 한장 한장 뜯어내며
무심히 붙이던 그 시간의 수 배 노력을 땀내나게 쏟아야 한다. 짜증.
사라지는 것의 조바심에 비하면 그 오만상은 비할 바 아니다.
드러내는 것이 더 많았던 그것은 이제 그 의도와는 다르게
푹 감추어져 버렸다. 지나간 역사는 더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듯.
숨겨진 의미는 사실 땀흘려 알 필요조차 없는
흩날리는 정보.
실은 그 분해의 과정이 존재의 이유. 땀.
The answer is...
조용히 조용히 세월의 산화속에 숨겨진 의미가 드러난다.
그 과정이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주며
기대감에 사람들은 그것을 괴물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의도를 알든 모르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원초적 말초적 근심으로
오히려 그 존재를 지키려 할지도 몰라.
그래,
오히려 그 존재를 감추게 될지도 몰라. 그래.
그러다,
그 존재의 이유가 희미해질 무렵
그들의 원초적 말초적 에너지가 희미해질 무렵
그 존재는 오히려 서서히 한 겹 한 겹
자연의 풍화,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는 거다.
그러나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든 무의미한 매순간의 우연이 그들 삶을 값지게 하듯.
그 순간이 올 즈음, 우연을 값지게 받아들일 이 얼마나 있을까.
퀴이즈도 아니고.
적어도 허무 삶이 되지 않기를.
드러내다 사라지는 것이 있다.
둘은 아닌듯 결국 함께.
모난, 고운.
하루 하루를 보내며
세월에 의해 산화되는 삶은
닳고 닳은 너와 내가 되는가 하면,
푹 고아져
희미한 빛깔, 찐득히 녹아든
너와 나
훌훌 삼킬 수 있는 진국이 되기도 한다.
Layers.
그것은 생활을 반영한다.
나를 보라고 좀 나를 보라고
고래고래 형형색색
눈길을 끈다.
한달, 한주 얼마 안가 그것은 또다른 색으로 덮힌다. 깨끗이.
풀은
, 본의 아니게,
, 그 전의 의미를 뭉게며,
, 보란듯이,
1미리도 되지 않는 역사와 역사를 끈적히 붙인다.
켜켜히 떡진 그 이야기를 알기 위해선 조심스레 한장 한장 뜯어내며
무심히 붙이던 그 시간의 수 배 노력을 땀내나게 쏟아야 한다. 짜증.
사라지는 것의 조바심에 비하면 그 오만상은 비할 바 아니다.
드러내는 것이 더 많았던 그것은 이제 그 의도와는 다르게
푹 감추어져 버렸다. 지나간 역사는 더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듯.
숨겨진 의미는 사실 땀흘려 알 필요조차 없는
흩날리는 정보.
실은 그 분해의 과정이 존재의 이유. 땀.
The answer is...
조용히 조용히 세월의 산화속에 숨겨진 의미가 드러난다.
그 과정이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주며
기대감에 사람들은 그것을 괴물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의도를 알든 모르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원초적 말초적 근심으로
오히려 그 존재를 지키려 할지도 몰라.
그래,
오히려 그 존재를 감추게 될지도 몰라. 그래.
그러다,
그 존재의 이유가 희미해질 무렵
그들의 원초적 말초적 에너지가 희미해질 무렵
그 존재는 오히려 서서히 한 겹 한 겹
자연의 풍화,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는 거다.
그러나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든 무의미한 매순간의 우연이 그들 삶을 값지게 하듯.
그 순간이 올 즈음, 우연을 값지게 받아들일 이 얼마나 있을까.
퀴이즈도 아니고.
적어도 허무 삶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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