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몇가지.
그 목적이 무언지에 따라 본질을 선택하는 경우.
이기적 욕망으로, 본능적인 자기방어.
그래서 알든 모르든 스스로를 기만할 경우.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 나머지 의미를 잃을 경우.
스스로의 오류에 대해 생각을 잃을 경우.
흔히 목적은 그럴듯하며, 행위는 사라진다.
본질은 선택이 되어 훌훌 날린다.
기회주의는 자라난다. 자각하지 못한채 싹이 튼다.
돌이켜 보면.
생각이 생각으로 그친다면 항상 기회주의와 위선의 틈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쉽겠지만. 그리 쉽지 않으니. 단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 목적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위선을 떨쳐버리기 위해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잡기 위해 큰 목적은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둔 것. 그것에 그야말로 의미를 두고 끝을 맞이한다. 어디서 흘러들어온지 알 길 없는 그럴듯한 의미로 감싼다. 이렇게 본질은 가려지고 희한한 논리로 그 의미가 달라진다. 목적은 수단으로 지워진다. 찾아가는 길이었다 말한다. 깊은 속 알길 없는 너와 나의 욕망으로. 뜨끔 뜨끔 뭔가 알겠다 싶을 땐 이미 늦었다. 이미 굳어진 이미지에 실은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말한다면 그 삶이 뭐가 되겠어. 그냥 그렇게 살다 가면 되겠다 싶은 맘으로. 욕망에 의해 지워진 목적은 본질이 슬쩍 뒤바뀐채 저잣거리에서 우상이 되어 나뒹군다.
행동은 온데 간데 없고, 말들이 날뛴다.
행동이 설령 온다한들, 그 목적은 본질이 아닌 자기 만족일 뿐.
부여잡은 행동은 그 목적이 본질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다만 스스로 알 길 있다면.
근데 그게 불가능한게, 알았다면 그렇지 않겠지.
단지 존재는 타인의 시선에 구속되어 발을 동동 구르니.
행위없는 공허한 말들이나.
본질잃은 알량한 행위들이나.
정도의 차이. 그냥 다 그랬구나.
부끄럽게 얼굴이 타오르는 밤.
폼나게 색안경을 끼고 밤길 어둡다 칭얼거린다.
내일은 또 누굴 만나 씨앗을 뿌리나.
주렁주렁 달린 탐스런 거짓부렁.
뻥치시네 소리에 놀라 움찔 보니
코에 난 구멍에 손을 후벼박고 꼬맹이가
내쪽으로 온다.
싶더니 휙 지나쳐 저리 간다.
드러워죽겠어.
엄만 너도 저랬다며
키워봐야 저 맘 안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