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형태가 있겠다.
세상에 이러 저러한 이유로 자신이 필요하다고,
자신이 하는 바, 그러 저러한 까닭으로 소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주장하는 데에는.
맞겠지. 아니면 여기 있지 않겠지.
그래서 나도 그런 까닭을 하나 더 슬그머니 얹어 본다.
--
내가 생각하는 형태 중 하나;
세상 모든 것, 대가 없이 어떤 바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루 또 하루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며
소소한 오늘처럼 내일을 맞이한다.
문득 생각해보면, 그 많은 대소사들이
어느새 넌지시 돈과 관계 맺지 않은 것 드믈다.
모른다 한들,
일을 열심히 하든 대강 대강 떼우든,
그 어떤 형태이든,
결국 스스로의 또 하루 목숨을 바치며 태우며 살고 있다.
소중한 목숨.
달리 어쩌겠어.
이런 순간, 이런 세상에 정신차려보니 놓여있는걸.
그러니.
그런 소중한 목숨 바치는데 쉽사리 지겨워지지 말라고
너와 나, 대소사의 틈바구니에서 잊혀진 빈 틈을 찾는다.
그런 빈 틈을 이미 존재하는 일상의 것들로 채워 나간다.
혹, 그러면 혹시라도
너와 나, 그 바쁜 와중에도
슬그머니 찾아오는 그 허한 공허함
채워주려나 싶어서.
--
혹, 이미 충분하여, 혹은 익숙함으로,
이 맘이 무슨 맘인지 알 필요 없는자.
그저 다행이라 여기고 깜냥 껏,
그렇게 어제처럼 오늘 내일을 살아간다.
조명이 될래요?
빛.
아둥바둥 세상에서 빛나려 할 때, 그 빛.
이 세상 형 형 색 색, 빛깔을 밝히고자 하는건지.
이 세상 시 리 도 록, 시꺼먼 세상 그저 시허옇게 덮고 싶은건지.
눈이 시리다.
세상에 빛이 너무 많다.
어둠, 그 용기와 지혜에 박수를.
어두움, 밝음, 어둠, 빛, 어둠.
니나.나나.니나노.
밝히긴 밝혔는데,
좀 너무 소란스러운게
귀가 따갑네 이제.
세상이 시허옇다.
아둥바둥 세상에서 빛나려 할 때, 그 빛.
이 세상 형 형 색 색, 빛깔을 밝히고자 하는건지.
이 세상 시 리 도 록, 시꺼먼 세상 그저 시허옇게 덮고 싶은건지.
눈이 시리다.
세상에 빛이 너무 많다.
어둠, 그 용기와 지혜에 박수를.
어두움, 밝음, 어둠, 빛, 어둠.
니나.나나.니나노.
밝히긴 밝혔는데,
좀 너무 소란스러운게
귀가 따갑네 이제.
세상이 시허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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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ee. I can see you.
혀와 몸.
너와 나의
욕심과 무지.
어설픈 기교.
섣부른 판단.
부족한 용기.
눈이 먼 지식. 가면. 쓰레기. 성장.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먹고
좋으면 좋아하고
싫으면 싫어하고
간단한건데
대가리 굴리던게 일이라
쓸데 없이 데구르르 굴러간다.
틀에 박힌 밥만 먹고
틀에 박힌 짓만 하더니
틀이 없으면 흐믈흐믈하구나.
그래 그걸 빛이라 여기고 죽 살아가면 되겠다.
뭐가 되도 뭐가 될거야.
한때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보며
정말 그러면 좋겠다 싶었다.
다만
혀로는 그렇게 살아간다해도
몸짓이 영 따라주질 않는구나.
보기가 부끄러워서
그런척 봐주기가 토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저 보지 않아야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안의 그림자를 찾느라 이것 저것 뒤적이던 사이
누군가의 그림자 안에서 나의 구멍을 느끼게 되었다.
입 밖에 두지 말고
몸 안에 두어야지.
혀 놀릴틈에
몸을 좀 놀려줘야지.
그래야
어떻게 살아도 결국 원하듯 사는 거니까
욕심과 무지.
어설픈 기교.
섣부른 판단.
부족한 용기.
눈이 먼 지식. 가면. 쓰레기. 성장.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먹고
좋으면 좋아하고
싫으면 싫어하고
간단한건데
대가리 굴리던게 일이라
쓸데 없이 데구르르 굴러간다.
틀에 박힌 밥만 먹고
틀에 박힌 짓만 하더니
틀이 없으면 흐믈흐믈하구나.
그래 그걸 빛이라 여기고 죽 살아가면 되겠다.
뭐가 되도 뭐가 될거야.
한때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보며
정말 그러면 좋겠다 싶었다.
다만
혀로는 그렇게 살아간다해도
몸짓이 영 따라주질 않는구나.
보기가 부끄러워서
그런척 봐주기가 토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저 보지 않아야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안의 그림자를 찾느라 이것 저것 뒤적이던 사이
누군가의 그림자 안에서 나의 구멍을 느끼게 되었다.
입 밖에 두지 말고
몸 안에 두어야지.
혀 놀릴틈에
몸을 좀 놀려줘야지.
그래야
어떻게 살아도 결국 원하듯 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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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ee. I can see you.
explicit - implicit
이게 무엇이고 저게 무엇이다 구분짓고 정의내리며
분명하고 명쾌한 무언가를 원하는 이들의 태도를 볼때
흔히 느끼게 되는건
정작 솔직하지 않은 무언가 그 터놓지 못하는
그들의 조심스러움이다.
,
뭔가 묘한듯 홀린듯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채
그 안에 품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이들의 태도를 볼때
흔히 느끼게 되는건
그들 솔직한 열정과 바람에 휩싸인
그들의 모호한 한계.
어느 누구나 구멍이 있고
어느 누구나 빛이 있겠지.
누군가의 어둠을 보며 그의 빛이 그래서 밝구나 느끼게되고
누군가의 빛을 보며 그 뒤에 가리워진 어둠을 짐작케 한다.
한때 세상은 참 공평치 못하다 생각했었는데
공평하다는 것이 무언지 다시 생각이 들곤하더니
요즘은 또 세상이 참 공평할 수 밖에 없다.
뭔가를 분명히 하려 할때 그들의 태도에서
정작 솔직할 수 없을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
솔직한 그들 맘 다 쏟아 뭔가를 지저귀는 그들의 태도에서
정작 그 무언가 모호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또한 공감이 간다.
빛과 그림자 안과 밖.
둘 다 동시에 가지려다보니 참 곤란하겠다.
속도 많이 상하겠다.
어두우려면 씨꺼미 어두워야겠고
밝으려면 시리도록 밝아야겠지.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채
니 맘 내 맘 다 잡으려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밝은듯 아닌듯 어두운듯 그런듯
침침하고 멍한 흐리멍텅 맥이 풀린
별 맛 없는 그것이 되어버리는 것.
너와 나의 무지와 욕심.
분명하고 명쾌한 무언가를 원하는 이들의 태도를 볼때
흔히 느끼게 되는건
정작 솔직하지 않은 무언가 그 터놓지 못하는
그들의 조심스러움이다.
,
뭔가 묘한듯 홀린듯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채
그 안에 품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이들의 태도를 볼때
흔히 느끼게 되는건
그들 솔직한 열정과 바람에 휩싸인
그들의 모호한 한계.
어느 누구나 구멍이 있고
어느 누구나 빛이 있겠지.
누군가의 어둠을 보며 그의 빛이 그래서 밝구나 느끼게되고
누군가의 빛을 보며 그 뒤에 가리워진 어둠을 짐작케 한다.
한때 세상은 참 공평치 못하다 생각했었는데
공평하다는 것이 무언지 다시 생각이 들곤하더니
요즘은 또 세상이 참 공평할 수 밖에 없다.
뭔가를 분명히 하려 할때 그들의 태도에서
정작 솔직할 수 없을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
솔직한 그들 맘 다 쏟아 뭔가를 지저귀는 그들의 태도에서
정작 그 무언가 모호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또한 공감이 간다.
빛과 그림자 안과 밖.
둘 다 동시에 가지려다보니 참 곤란하겠다.
속도 많이 상하겠다.
어두우려면 씨꺼미 어두워야겠고
밝으려면 시리도록 밝아야겠지.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채
니 맘 내 맘 다 잡으려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밝은듯 아닌듯 어두운듯 그런듯
침침하고 멍한 흐리멍텅 맥이 풀린
별 맛 없는 그것이 되어버리는 것.
너와 나의 무지와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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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ee. I can see you.
혹시.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사람은 변하기 힘든가보다.
드러움에 힘이 빠졌고,
그 드러움에 힘이 솟았다.
천연덕스레 모르겠다는 말에, 그렇구나.
그래, 확신 또한 생겼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겨먹었구나.
아닌척 하는거라면 그게 너의 한계일거야.
정말 모르겠다면 그게 너의 숨겨진 본성인거야.
그냥 그런거.
인연이 결과적이라니.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은
그 과정, 그 순간이 그 인연인가봐.
한데 얽혀,
드러움 아쉬움 그저 넉넉함으로.
그런거 저런거 차라리 예뻐보이는.
그냥 스쳐지나치는 바람처럼.
모든게 그냥 사랑.
그냥 사랑이길.
아 그래도 이 사랑.
지금 너는 너무 드러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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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ee. I can see you.
400 words; 우스운 미래
당연시 되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
왜 그것은 그리 당연한 것이 되었나?
우리 삶을 둘러싼 당연함 속에서
나의 호기심은 -나로 인해, 남으로 인해- 어떤 일을 겪나?
정상, 비정상?
그것을 판단케 하는 우리의 기준은 무엇이고,
기준이 있다면 그 역치는 어디즈음이며,
어디로부터 왜, 어떤 절차로 형성되었나?
뚜렷한 목표, 확실함, 이성적 논리 따위로 점철되는 우뚝 선 사회 속에서
무심코 마주하게 되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때론 시시하기까지 한,
다소 서툴고, 덜 정제된 다분히 개인적인 가치, 기준의 사회적 발현은
정말 생각만큼 불안하고 공허한 헛된 것일까.
다양성과 다채로움, 이해와 공감.
힘주어 외치며 주장하던 꼴안에서
정작 스스로 눈이 먼건 아닐까.
프로페셔널리스트로서 살아가는 우리.
그 전문화된 조직적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
아마추어보다 더 못한 유아적 발상은 개인의 삶과 사회에
과연 어떤 가능성과 미래를 가져올까?
우스운 미래라면 지금처럼 우습겠고,
혹, 그렇지 않다면 지금보다 웃을 수 있겠지.
/
파생되는 practice;
1. Stopped Questions.
2. 나는 이걸 이거라 불러요.
3. EXTRA SIGNAL by Som Ebody (익스트라시그널, Som Ebody 작품집)
왜 그것은 그리 당연한 것이 되었나?
우리 삶을 둘러싼 당연함 속에서
나의 호기심은 -나로 인해, 남으로 인해- 어떤 일을 겪나?
정상, 비정상?
그것을 판단케 하는 우리의 기준은 무엇이고,
기준이 있다면 그 역치는 어디즈음이며,
어디로부터 왜, 어떤 절차로 형성되었나?
뚜렷한 목표, 확실함, 이성적 논리 따위로 점철되는 우뚝 선 사회 속에서
무심코 마주하게 되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때론 시시하기까지 한,
다소 서툴고, 덜 정제된 다분히 개인적인 가치, 기준의 사회적 발현은
정말 생각만큼 불안하고 공허한 헛된 것일까.
다양성과 다채로움, 이해와 공감.
힘주어 외치며 주장하던 꼴안에서
정작 스스로 눈이 먼건 아닐까.
프로페셔널리스트로서 살아가는 우리.
그 전문화된 조직적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나의 동시대인들에게
아마추어보다 더 못한 유아적 발상은 개인의 삶과 사회에
과연 어떤 가능성과 미래를 가져올까?
우스운 미래라면 지금처럼 우습겠고,
혹, 그렇지 않다면 지금보다 웃을 수 있겠지.
/
파생되는 practice;
1. Stopped Questions.
2. 나는 이걸 이거라 불러요.
3. EXTRA SIGNAL by Som Ebody (익스트라시그널, Som Ebody 작품집)
- Drawings overlooked
- Sculptures abandoned
- Installations dumped
- Performance bychance
- Commercials byc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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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stopped questions.
생각을 글로 옮길때.
뭔가를 다듬으며 더 정확한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깎여나간 그 원석들 속에 미묘히 변하는 뭔가를 잃게 된다면.
그럴 일 없을까.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놓는,
그 중 나의 맘을 두드리는 글들을 볼때마다.
내면, 깊이, 태도, 지혜, 희생.
빽빽한 글 사이 스며나오는 그의 내면,
그의 진심과 경험에서 나오는 깊이,
설득을 위해 짓누르지 않는 사려깊은 태도,
의미를 위해 때론 빙둘러 돌아갈 줄 아는 지혜,
심지어 모순된 모습으로 대상의 반성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희생,
모든게 휘휘 저어져 의도따위 떠벌림 없이
소소히 시나브로 저절로 전해지는 무언가.
그 맘에 도달하기까지의 나의 여정에,
또 그 글을 써나가던 그 분의 여정을 떠올리며,
내 맘이 하아...베시시 설레어진다.
누군가는 알듯 모를듯 지극히 그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나를 움직이고.
누군가는 어려운듯 지적인듯 흔히 말하는 객관적이라는 글로 나를 이해시킨다.
결국 모두 출발할 때의 맘은 달랐지만,
그 결과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을 보며
무엇이 옳은 길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이십대의 혈기가 생각이 났다.
무엇이 효과적일까를 고민하던 즈음
내 맘도 내가 잘 모르는구나 싶어
어느새 내 맘이 궁금해졌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되며 반가운 것은,
더이상 누군지 모를 누군가를 생각하며
나의 작은 머리를 떼구르르 한없이 굴려보지 않아도 되겠거니.
파고 파고 또 파도 알 길 없는 누군가의 맘을 들여다 보느라
내 맘은 여기 저기 거미줄이 앉았다.
그럴일 없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거니 싶어서.
19 / May / 2011.
그러나 깎여나간 그 원석들 속에 미묘히 변하는 뭔가를 잃게 된다면.
그럴 일 없을까.
생각을 글로 정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놓는,
그 중 나의 맘을 두드리는 글들을 볼때마다.
내면, 깊이, 태도, 지혜, 희생.
빽빽한 글 사이 스며나오는 그의 내면,
그의 진심과 경험에서 나오는 깊이,
설득을 위해 짓누르지 않는 사려깊은 태도,
의미를 위해 때론 빙둘러 돌아갈 줄 아는 지혜,
심지어 모순된 모습으로 대상의 반성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희생,
모든게 휘휘 저어져 의도따위 떠벌림 없이
소소히 시나브로 저절로 전해지는 무언가.
그 맘에 도달하기까지의 나의 여정에,
또 그 글을 써나가던 그 분의 여정을 떠올리며,
내 맘이 하아...베시시 설레어진다.
누군가는 알듯 모를듯 지극히 그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나를 움직이고.
누군가는 어려운듯 지적인듯 흔히 말하는 객관적이라는 글로 나를 이해시킨다.
결국 모두 출발할 때의 맘은 달랐지만,
그 결과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을 보며
무엇이 옳은 길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이십대의 혈기가 생각이 났다.
무엇이 효과적일까를 고민하던 즈음
내 맘도 내가 잘 모르는구나 싶어
어느새 내 맘이 궁금해졌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되며 반가운 것은,
더이상 누군지 모를 누군가를 생각하며
나의 작은 머리를 떼구르르 한없이 굴려보지 않아도 되겠거니.
파고 파고 또 파도 알 길 없는 누군가의 맘을 들여다 보느라
내 맘은 여기 저기 거미줄이 앉았다.
그럴일 없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거니 싶어서.
19 / May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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